뒤처지는 것 같아 조급한 모두에게
뒤처지는 것같다고 느끼는 나에게 쓰는 편지
*이 글은 2021년 12월 2일에 작성된 글을 옮긴 글입니다.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는 것으로부터 100% 자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전혀 자유롭지 못한 편인 나는 당연히 요즘이 가장 고민과 걱정이 많은 시기이다.
미국으로 다시 오는 데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원 프로그램이었다. 엄청 유명하고 좋은 프로그램이라서가 아니라 외국인 학생이 학교를 다니면서 '실습'이라는 명목하에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비자를 주고, 또 졸업 후 STEM OPT로 3년 동안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 출국 직전 학교가 코로나로 인해 대면 수업을 하지 않게 되면서 비자를 받지 못했고 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년 초에는 다시 학교가 대면 수업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마 전 내년 봄까지 대면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이메일을 받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에 온 뒤로 8월부터 11월까지 한국에서 일했던 스타트업에서 계속 리모트로 일을 하긴 했지만, 풀타임으로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제대로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정말 일이 너무 하고 싶다.
나는 일하는 것을 정말 즐거워하는 편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이루고자 하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성취 욕구가 엄청난 만큼 일을 잘 해내었을 때 성취감이 크다. 그런데 요즘 내가 일을 하지 못해 왜 이렇게 불안한가 생각해 봤을 때 단순히 일이 즐거워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분명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일하는 사람처럼 정말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저것 정말 다양한 것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이렇게 그냥 살아도 되는 건가?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버려도 괜찮은 건가?
2019년 여름에 보스턴을 떠났다. 그리고 2021년 여름 보스턴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정말 제자리로 돌아왔다. 2년 전에도 학생 신분이었고 가장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은 다니고 있던 교회에서 찬양인도와 다양한 사역이었다. 그리고 2년 후 지금, 어쩌다 보니 다시 그 교회에서 찬양 인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똑같이 학생이기도 하다.
2019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2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했고,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게 되니 마음이 이상하다. 분명 지금의 삶도 너무 즐거운데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제자리로 돌아오니 내가 그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비자가 나오지 않아 학교를 통해서 일할 수도 없고, 공부를 하고 싶어 갔던 학교도 아니기 때문에 다음 학기는 휴학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취업 비자 발급이 쉬운 Nonprofit Job을 알아보고 있다. 물론 내가 일해왔던 High-Tech Industry가 아니기 때문에 Job Description을 봤을 때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Job Searching을 하다 보니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은 더 커졌다. 그래도 금방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적어도 인터뷰라도 많이 잡힐 줄 알았는데, 지원하는 수에 비해 연락이 오는 곳이 매우 적다. 참 쉽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 예배를 준비하고, 또 주일에 예배 시간 때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내가 원했던 대로, 내가 바랐던 대로 살고 있었지?
생각해 보면 원래 내 인생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내가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바랐던 대로 상황이 술술 풀렸던 적이 거의 없다.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애초에 세일즈는 내가 정말 하기 싫었던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세일즈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세일즈는 뭐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건지, 잘하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게 되는 건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좋은 매니저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졸업 후 미국에서 일을 하다가 취업 비자가 나오지 않아 한국으로 갑자기 가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결혼한, 그때 당시 여자친구였던 나의 아내와 떨어지게 됐고 신입으로 들어가 꽤 큰 성과를 내고 있던 팀도 하루아침에 떠나게 됐다. APAC 팀으로 옮긴 뒤 하던 일도 정말 지루하고 배움이 없어 지루했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자 하고 이것저것 하던 중 이전 직장 '코멘토'를 알게 되었고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말 많이 배웠다.
그리고 또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Nonprofit Job을 알아보고, 혼자서 해볼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고, 공부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공부해 보고, 교회에서 열심히 찬양 인도를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내게 맡겨진 일들을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다. 어차피 내가 지금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갑자기 영주권이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코로나가 갑자기 멸종돼서 대면 수업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난날들처럼 내가 그 순간순간할 수 있었던 일을 열심히 하고, 맡겨진 일들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또 놀랍게도 내가 예상치 못했던 기회가 생기고, 배움이 있고,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고, 또 좋은 꿈을 향해 함께 달려갈 동료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 걸 믿는다.
그러니 혹시라도 지금 나와 같이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아 초조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힘을 내기를 바란다. 그냥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면서, 갖고 있던 꿈을 잃지 말자. 분명히 모든 것은 결국 잘될 거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성경 구절이다. 그리고 또 간절한 무언가가 있을 때 한 번씩 찾아보게 되는 성경 구절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메시지가 있다.
근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결국에 일이 잘 풀린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또 하나님의 때에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니 나는 그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오늘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는 것. 그것이 로마서 8:28의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