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꿈을 꾸게 됐을까? #2

힘들었던 미국 유학 1년차

*이 글은 2021년 1월 1일에 작성된 글을 옮긴 글입니다.


삶의 터전이 바뀐다는 것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쉽지 않다. 특히 원하지 않았다거나, 뜻하지 않았던 변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농구를 포기했다.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누구도 내게 어떻게 건강하게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그저 나는 농구 선수가 될 재능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은 내가 갈 수 없는 길이라는 말뿐이었다.

아무리 단어를 미친 듯이 외었다고 해도 그 단어를 조합해서 대화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도저히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과 노트 필기를 동시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의 말에만 집중해서 듣고, 선생님이 수업 후 올리는 PPT 자료를 다운 받아 집에서 노트 필기를 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10분~30분 걸리는 숙제도 나는 2시간이 넘게 걸렸다. 한 문단을 읽는데 영어 사전에서 단어를 열 번 이상 찾아야 했다. 학교를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우선 못했던 노트 필기부터, 단어 사전을 찾으며 숙제를 끝내면 늦은 저녁이 됐다. 그리고 함께 농구할 친구도 없었다. 주말에 집 뒤에 있는 공원에서 혼자 슛 연습을 하는 게 전부였다. 심지어 나는 슛을 참 못 쐈다. 농구를 그만둔 2018년까지도 나는 슛을 잘 쏘는 선수는 아니었다. 참 재미없고 서러운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 적응을 하기는 했다. 3개월쯤 뒤부터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노트 필기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한 6개월 뒤에는 영어로 꿈을 꾸기도 했다. 학교 농구 신입생 팀에 합격해서 농구를 하며 친구들도 사귀었다. 그럼에도 행복하지는 않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고는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있기는 할까?

미국에 처음 갈 때는 어머니가 함께 갔다. 너무 갑자기 가게 된 만큼 적응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1년만 함께 있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6개월이 지난 2008년 겨울 사립 기숙사 학교 전학 준비를 했다. 역시나 한국 가정답게 좋은 고등학교 전학을 위해 토플 시험, SSAT (사립 고등학교 입학시험), 포트폴리오 준비, 면접 준비로 바빴다.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지원을 했던 고등학교들 중 상위권은 다 떨어졌고 붙은 곳은 딱 하나뿐이었다. 내가 느끼기엔 내가 뭘 잘해서 붙은 게 아니라 그냥 내 누나가 그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준 것 같다. 농구를 잘 못해서 미국으로 팔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뭔가 잘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았다. 근데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서 참 안타까웠다. 나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굳이 이 세상에 태어나야 했을까?

이상하게 나는 저런 질문을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에게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답변을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으로부터 얻으려 했다. 그리고 내가 농구를 나름 학교에서, 동네에서 잘하는 편이었을 때 얻었던 인정은 내 삶의 큰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게 내 행복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농구를 더 열심히 하고, 잘하면 그 행복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미국에서 와서 첫 1년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려웠다. 나는 잘 하는 게 없었다. 그나마 사교성이 밝고 사람들과 잘 지냈던 장점마저도 언어의 장벽으로 오히려 단점이 됐다. 쓸모가 없어 보였고, 너무 속상했다.

내가 굳이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했을까, 나는 필요한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이 점점 더 커졌다.  주변에 그 어떤 사람도 내가 왜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인지, 아니 그런 거창한 이야기를 떠나서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 주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열심히 하는 거였다. 열심히 하는 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할 수 있는 거였기 때문이다. 물론 잘하는 것은 별개지만.

그렇게 미국에서의 첫 1년이 지나가고 나는 삶의 터전이 뉴저지에서 펜실베니아로 또 바뀌었다. 그나마 나를 붙여준 학교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