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꿈을 꾸게 됐을까? #1

자동차 디자이너에서 농구선수로, 그리고 미국 유학까지

*이 글은 2020년 12월 28일에 작성된 글을 옮긴 글입니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다들 TV, 영화, 책 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신의 장래희망을 정하게 되는 기회들을 갖는다. 나 또한 그랬고 참 다양한 장래희망이 있었다. 군인, 소방관, 경찰, 대통령, 우주선을 만드는 과학자, 타임머신을 만드는 과학자, 중세 시대 기사, 대장군, 축구 선수, 농구 선수...

짧게는 한 달마다, 조금 더 길게는 방학마다 장래희망이 바뀌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조금 진지하게, 그리고 나름 진득하게 희망하던 진로가 생겼는데 그게 중학교 1학년 때 '자동차 디자이너'였다.

그 이유는 영화 '이탈리안 잡'에서 자동차를 사용해서 추격/액션씬을 매우 잘 뽑았고, 나도 저런 멋있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자동차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지만, 그때 당시 미술 학원을 열심히 다녔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그럼 너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면 되겠다"라는 이야기에 뭔지 모르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다.

어떻게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는 건지 몰랐기 때문에 선생님한테 나는 이제 자동차만 그리겠다고 했다.

실제로 위 사진에 나오는 '미니쿠퍼'를 그렸다. 그리고 별로 재미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가장 재밌는 것을 찾아 나의 장래희망이 또 바뀌었다. 바로 '농구 선수'.

이번에는 '자동차 디자이너'보다 훨씬 더 진지했다. 새벽에 일어나 수업 시작하기 전에 연습도 하고 (물론 수업 시간에 부족했던 잠을 보충했다) 학교 끝나면 밤늦게까지 농구장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잘했던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서 몰래 혼자서 연습도 참 열심히 했다. 나는 전형적인 재능 없는 노력파였다. 아, 노력도 재능이라면, 나는 노력만 타고났다.

노력만 타고났던 나였지만, 그때 당시 매일매일 보던 '슬램덩크'를 통해 남들보다 100배, 1000배 노력한다면 부족한 재능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처음에는 못했던 애들 중 하나였지만, 나중에는 나름 동네에서 잘하는 애들 중 하나가 됐다. 그래서 '농구 선수'도 노력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농구할 때 나는 가장 행복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부모님에게 어느 날 농구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아마 그때가 부모님이 내 선택을 처음으로 강력하게 반대했던 순간인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도전해보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도록 언제나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그것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가르치셨는데 이때만큼은 도전해볼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만큼 의지하던, 나에게 농구를 처음 가르쳐준 코치님도 나는 '재능이 없다'라고 하셨다.

정말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더 엇나갔다. 그 이후로 더 열심히 농구하고 더 열심히 학교/학원 공부를 멀리했다. 내가 노력해서 농구 선수로 성공해 보이겠다는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작 몇 개월간의 발버둥 끝에 나는 인정했다.

나는 재능이 없다.

나는 재능이 없었다. 노력이라는 재능은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하는 모두가 이미 다 갖고 있는 것이었고, 그중에서 특출나기 위해 필요했던 재능이 나는 없었다. 그걸 내가 제일 잘 알았고, 그래서 더 인정하기 싫었다. 끝내 그것을 인정하게 됐을 때 참으로 막막했다. 나는 재능이 없고, 프로선수가 되기 위한 도전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없지만, 그럼에도 농구를 하는 순간은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농구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앞으로 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릴 기회가 없다는 뜻 같았다.

부모님 앞에서 내가 재능이 없음을 인정하고 농구 선수의 길을 포기하겠다고 하자마자 미국 유학을 가게 됐다. 농구 선수를 하겠다고 말썽 피우다 그 벌로 마치 팔려가듯 미국 유학이 결정됐다. 다니던 중학교는 한 달 뒤 자퇴를 했고, 매일 4시간 정도만 자면서 영어 공부를 했다. 유학 결정이 되고 집에 찾아온 토플 과외 선생님이 수준 파악을 위해 그 주 토요일에 토플 시험을 잡아놨다. 그리고 나는 한 과목에 30점 만점, 네 과목으로 총 120점 만점이 토플 시험에 23점을 맞았다.

선생님은 토플 과외를 평생 하면서 이런 점수는 처음 본다며 크게 웃으셨고, 난 그것에 분노해서 단어를 정말 씹어먹듯 외웠다. 매 수업 시작할 때 단어 시험을 봤는데 난 한 번도 통과하지 못한 적이 없다. 농구는 재능이 없어 포기했고, 이제는 가서 뭘 하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 미국을 가는데 영어는 못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더 이상 꿈같은 거는 없었다. 그냥 그날 하루에 최선을 다했다. 막막한 인생에서 내게 견딜 힘을 준 건 역시 하루에 약 두 시간 정도 허락된 농구였다.

그리고 약 4개월간의 영어공부를 끝으로 2008년 8월,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