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마르다를 묵상하다 들었던 생각: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마리아와 마르다를 묵상하다 들었던 생각: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기쁨과 감사로 살아보려고 한다!

마리아와 마르다를 묵상하다 들었던 생각: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Photo by Nghia Le / Unsplash

최근 교회 예배팀에서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함께 묵상하며 예배를 준비하는 각자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배팀 특성상 마르다처럼 섬기는데 마음이 분주해서 정작 중요한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부분은 없는지, 어떻게 마르다처럼 예배를 준비하고, 마리아처럼 예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본문을 계속해서 읽다가 들었던 생각이 있어 오랜만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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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38절-42절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마음이 붕 떠 있던 최근

최근 여러 이유로, 또는 나도 잘 모르겠는 이유로 마음이 붕 떠 있었다. 그래서 나한테 맡겨진 일에 100% 집중을 잘 못 했다. 엄청난 번아웃이라기에는 너무 정상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잘하고 있긴 하고, 피곤하다고 하긴 꽤 에너지가 있었다.

어쨌든 회사 일과, 교회 찬양팀 사역, 가정과 육아, 그리고 열심히 연습하던 골프 다 정상 컨디션과 비교하면 결과물이나 보여지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을 수 있지만, 그 일을 하는 나는 알았다.

뭔가 내 마음의 중심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기는 번아웃이라기 보다는 너무 잡생각이 많았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름 말씀도 보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해보면서 내 안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 왜 이런 걸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마리아는 왜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었을까?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마리아는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식사 준비와 손님을 접대하느라 너무 바빴던 언니 마르다도 보지 못하고 예수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 전, 마리아의 집에 한 번 더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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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1-8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나사로는 식탁에서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말하였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왜 300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는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을까? (1 데나리온 = 노동자의 하루 품삯 --> 약 1년 치 연봉)

나의 묵상 #1: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마리아는 지금 이 순간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에게 드린 것이다. (예배의 의미 중 하나,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 또는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것.)

나의 묵상 #2: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행동했다.

마지막인 줄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한 지금 이 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에게 드린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두 가지 묵상 중 뭐가 정답이든, 또는 오답이든, 내가 내린 중요한 결론이 있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잡생각에 사로잡혀, 근심과 걱정하고 하루를 낭비할 것인가? 기계적으로 맡겨진 일을 해내긴 하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사랑과 정성이 없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특별히 허락하신 오늘 이 하루, 맡겨진 일들,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기쁨과 감사로 하루를 살 것인가?

나는 기쁨과 감사로 하루를 살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