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KOSTA USA를 다녀와서 (Feat. 자유란 무엇인가? 찬양팀을 섬기며 느낀 것들)
2026 KOSTA USA: Unbounded Calling, 자유로의 초대 코스타를 찬양팀으로 섬기며 느낀 것들을 나눕니다.
지난주, 코스타 찬양팀을 섬기러 4박 5일 동안 시카고에 다녀왔다. 2023년에 처음 찬양팀으로 섬기게 되면서 갔었는데, 그 이후로 3년 만에 다시 섬기게 되었다.
지난번에도 예배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배운 것이 참 많았다. 그것들을 지금 섬기는 교회 예배팀에 하나씩 적용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무언가를 느끼고 배워서, 돌아와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지난번에 부족했던 것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더 잘 준비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이번 코스타의 주제는 Unbounded Calling, 자유로의 초대였다.
다녀와서 그 시간을 돌아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다. 나는 참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코스타를 돌아보면 이 글에서 나눌 이야기는 이렇다.
- 자유란 무엇인가: 코스타에서 나눈 이야기들
- 자유롭지 못했던 요즘
- 찬양 인도자로서의 자유
자유란 무엇인가?
코스타 내내 강사님들은 자유를 여러 각도에서 풀어주셨다. 그중 내게 오래 남은 것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본래의 모습답게 살 때 자유하다
장민혁 전도사님은 새장에 갇힌 새 이야기를 하셨다.
새장 안의 새는 왜 자유로워 보이지 않을까?
새는 원래 날도록 지어진 존재인데, 날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본래 창조된 모습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창세기 1장 26~27절은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공동체로 존재하시며 사랑의 관계 안에 계신 분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지어졌다.
그래서 만약 내가 원하는 자유가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닮은 자유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유는 함께하는 자유, 사랑하는 자유이지 나만을 위한 자유, 통제하는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을 닮아갈 때, 주님을 향해 갈 때 진정으로 자유하다.
자유는 이미 주어졌다
문제는 현실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본래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자유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하셨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8장 36절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라고 선언한다.
박성일 목사님이 요한복음 8장을 풀어주시며 강조하신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요한복음에서 '죄'는 어떤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이며, 자유는 그 불신을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주어진다는 것. 결국 자유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핵심은 이 자유가 내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자유에는 명확한 경계가 있다
그리고 이 자유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에는 정해진 프레임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프레임 안에 있을 때 가장 자유할 수 있다.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하나님은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자유롭게 먹으라 하시되, 선악과 하나만은 먹지 말라 하셨다. 넉넉한 자유, 그리고 하나의 프레임이다.
프레임이 없는, 경계가 없는 자유는 방종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어진 자유가 우리를 풍성하게 한다.
자유는 텅 빈 벌판이 아니라, 선이 그어진 운동장 위에서 누리는 것이다.
자유는 주어졌지만, 누릴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코스타 일정이 시작되기 전 주일날 섬김이들 예배 때 강동인 간사님이 나눠주신 비유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축구장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일까? 메시, 호날두, 손흥민처럼 축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그 뒤에 엄청난 양의 훈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졌고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잘" 누릴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잘 누리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더 잘 믿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컨디션이 좋으나 나쁘나 루틴을 지키며 매일 땀 흘리는 선수처럼 말이다.
박성일 목사님도 제자란 결국 누군가의 밑에서 배우는 사람이기에, 자유를 주신 예수님께 배우며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물론 훈련이 부족하면 자유를 아예 못 누리느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을 좀 못 차더라도 맑은 하늘 아래 푸른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 그것도 자유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유롭지 못했던 요즘
코스타 기간 동안에는 정말 오랜만에 육아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나의 마음 상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됐다. 나는 요즘 자유를 좀 다른 데서 찾고 있었다.
최근 아내와 이야기할 때 경제적 자유, 시간의 자유, 인생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원래 나는 이런 걸 크게 원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경제적 자유
첫 직장인 대기업을 다니다 스타트업으로 옮기며 연봉의 60% 이상을 포기했을 때도, 그 후로 연봉이 오르기는커녕 계속 깎여나갈 때도 경제적 자유를 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둘이 되고, 내가 아낀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게 되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기도 하고, 지금 한 시간 넘게 떨어진 교회와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서 부담 없이 더 잘 섬기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려면 집값도 훨씬 비싸지고 더 많이 벌어야 한다.
시간의 자유
시간의 자유는 더하다. 하고 싶은 건 너무 많고 포기는 잘 못하는 성격인데, 아이가 둘이다 보니 정말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다. 체력이 좋은 편이라 잠을 줄여가며 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끝내지 못한 일들이 계속 눈에 밟힌다. 내 시간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 참 마음이 어렵다.
대학생 때, 마블 영화가 한창 유행하며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냐는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무한한 체력이 생겨서 잠을 안 자도 되고, 그만큼 쓸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답하던 사람이었다. 그때도 그랬으니 지금은 오죽할까.
다시, 자유는 이미 주어졌다. 나는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을 뿐
결국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점점 많아지는 상황에 갑갑함을 느꼈던 것 같다. 너무 많은 것들이 내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은 것들로부터 좀 자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코스타에서 시간을 보내며 든 생각은 정반대였다. 나에게 감사할 것이 이렇게 많고 누릴 자유가 이렇게 많은데, 정작 주어진 것을 보지 못하고 다른 데 시선을 두고 있었다.
김종필 박사님이 죄는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돌아갈 때 가장 자유하다고 하셨다.
나는 자꾸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돈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감사하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고, 집에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고,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과일이나 간식도 사줄 수 있다. (물론 요즘 진짜 엄청나게 먹는다 ㅋㅋㅋ)
시간도 더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도 아이가 둘이나 있고 둘째는 겨우 10개월인데, 1년 전에는 교회를 개척했고, 이렇게 일주일이나 집을 비우고 코스타를 섬기러 왔고, 취미로 골프도 치고 있고, 블로그도 쓰고 있으며, 새벽까지 못다 한 일을 할 수 있는 체력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곁에서 도와주는 아내가 있다.
이게 얼마나 감사하고 넘치도록 누릴 수 있는 자유인가.
찬양 인도자로서 자유하다는 것
이번 코스타에서 또 하나 깊이 묵상한 것은 찬양 인도자로서의 자유였다.

2018년부터 인도했으니 찬양 인도를 한 지도 꽤 됐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상황에서 예배를 세우기도 하고, 후배 인도자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그렇게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늘 나오는, 그런데 답이 잘 나오지 않는 주제가 하나 있다. 찬양 인도를 하면서 어떻게 자유할 것인가, 그리고 과연 자유할 수 있는가.
이번 코스타에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찬양 인도자로서 자유하려면 실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음악적인 실력만이 아니라 영적인 실력도 함께 필요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훈련이 부족해도 자유를 어느 정도는 누릴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게 자유를 누리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마다, 상황마다 지금 필요한 훈련이 영적인 훈련인지 음악적인 훈련인지는 다르다.
같이 섬긴 분들과 이야기하며 동의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훈련"은 그저 피땀 흘리며 고생하고 고통스러운 훈련이 아니라, 기쁨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훈련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성으로 수고해서 세운 예배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때,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이다. 그 기쁨을 한 번 경험하면, 더 이상 소홀할 수가 없다.
정말 자유하기에는 힘들었던 예배
코스타는 특이하게도 모든 싱어가 돌아가며 인도를 한다. 최소 한 곡은 맡아서 찬양을 인도하게 된다. 그래서 콘티를 짤 때 주제에 맞는 곡을 추천해두고, 선정된 곡을 배정받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 내가 인도하게 된 곡 중 하나가 This is Amazing Grace였다. 내가 추천한 편곡은 놀라우신 은혜였고, 그걸 배정받아 평소 자주 하고 듣던 곡이라 마음이 편했는데, 알고 보니 가스펠 버전 편곡이었다.
내가 찬양 인도자로서 가진 최대 약점을 꼽자면 리듬감, 박자감이 최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음을 익히는 것이 꽤 느린 편이다.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어서 이렇다 할 스킬도 없고, 기본 멜로디 라인을 벗어나는 애드리브는 전혀 하지 못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도대체 어떻게 찬양 인도를 했던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에 처음 가스펠 편곡을 시도하게 됐다.
어쨌든 맡겨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밤을 새워 멜로디부터 익히고, 음원에서 인도자가 기존의 멜로디와 리듬을 벗어나 애드리브하는 부분을 전부 땄다. 나는 음감이 떨어져서 듣고 바로 되는 사람이 아니라, 0.8배속으로 늦춰놓고 음을 하나하나 따라 부르며 녹음해서 원곡과 비교했다.

그렇게 다 따고 나서 나름 느낌을 내서 한 번 해봤다. 녹음해서 들어보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진짜 별로였다 ㅋㅋㅋ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아내에게도 조언을 구하며 정말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시카고로 떠났다. 가는 비행기에서도 준비했고, 도착한 일요일에도 내내 준비했다. 팀원들이 함께 하는 연습이 끝난 뒤에도 밤에 혼자 연습실에 가서 연습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자유하자!
그날 밤, 연습하다가 혼자 울었다. 음악적으로 너무 역량이 떨어지는 것 같고 민폐가 되는 것 같아서 열등감이 폭발했다. 속상했고,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안 되는 것에 짜증이 났다. This is Amazing Grace뿐 아니라 테너 화음을 넣어야 하는 곡들도 있었는데, 100번도 넘게 연습했지만 연습할 때는 되다가도 실전에만 가면 계속 안 됐다.
속상해서 기도하다가 이런 마음을 주셨다.
자유하려면 실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 다 아신다는 것. 이 수고를 보시며 그래도 기뻐하실 거라는 것. 그러니 연습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은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기도로도 함께 준비하되, 찬양을 선포해야 할 때는 최선을 다해 자유롭게 선포하자는 것.
월요일이 되어서도 테너 화음이 안 돼서 낮 쉬는 시간에 혼자 연습하다 또 울었다 ㅋㅋㅋㅋ 그날 저녁 예배에서 테너 화음은 결국 반은 되고 반은 안 됐다. 안 될 때는 그냥 멜로디를 불렀다. 그저 자유롭게 가사를 선포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다음 날에도 저녁 예배에 This is Amazing Grace가 있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연습했다. 쉬는 시간에도 혼자 방에 들어가 연습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제 부족함이 함께 예배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ㅋㅋㅋ)
그리고 예배 때 정말 최선을 다했다. 최대한 나답게 하려고도 노력했다. 하나님이 주신 큰 목소리로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완전하신 사랑을 찬양하자고 선포했다. 가사 하나하나, 음 하나하나, 주님을 높여드리기 위해 준비한 대로, 준비한 것이 잘 안 되더라도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나아갔다.
예배 후 셀레브레이션 때도 Reflection & Prayer를 담당하신 김재우 선교사님이 다시 한번 부탁하셔서 그때도 정말 최선을 다해 주님을 높이며 나아갔다. 심지어 그때는 기도 시간에 엉엉 울다가 끌려 나오다시피 해서 하게 됐고 ㅋㅋㅋ 클릭을 제대로 못 들어 처음 솔로로 들어가는 부분의 타이밍도 놓쳤는데, 백킹 트랙만 100번 넘게 들어서인지 중간에 운 좋게 맞게 들어갔다.
두 번째라서 그랬는지, 그래도 그때는 더 자유롭게 했던 것 같다.
역시 자유는 주어졌다. 누려야 한다. 잘 누리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코스타를 통해, 지금 나에게 어떤 훈련이 더 필요한지가 명확해졌다.
자유로의 초대
하나님은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하셨다. 자유는 이미 주어졌다.
그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를 잘 누리려면 실력이 필요하고, 실력을 기르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훈련은 혼자보다 함께, 공동체 안에서, 교회 안에서 할 때 지속된다.
나에게도 자유는 이미 주어졌다. 앞으로 나는 그 자유를, 곁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더 누리고 싶다.